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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말

선을 지킨다는 것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관계를 분리하고 싶었던 때가 있다.

좋게 말하면 관계를 분리해서 실수를 방지한다는 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결국 팀원들과 일정 거리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나름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관계일수록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확률이 높았다. 회사는 자신을 세일즈하며 존재 가치를 증명해보이는 곳으로 여기고, 결국 서로간의 암묵적인 평가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료 평가가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더욱더 일정 수준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선을 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이게 맞는 방법인가 고민이 들었다.

협업을 하다보니 분명 팀원간의 친밀함이 퍼포먼스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나는 이 정도면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 입장을 들어본적은 없다. 하지만 나보다 친한 동료와 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의사소통이 더 편해보였다. 실수하기 싫어서 했던 행동들이나 언행이 나는 예의바른 것이라 여겼는데, 상대 입장에서는 불편하거나 선을 긋고 있다고 느꼈을 것 같다.

팀원 간 친밀도를 높이자고 온보딩 프로세스 개선까지 내가 했으면서, 말과 행동의 괴리가 생기고 있었다. 조금 더 편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돌고 도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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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연히 들은 노래가 있다. 유심초라는 남성 그룹의 노래로 기억하는데, 노랫가사가 너무 좋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사람 인연이 낭만적이면서, 나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의 근거가 된 것 같다. 나도 장난치고 싶고, 때로는 가벼운 농담도 던지고 싶은데, 입술 끝에서 차마 나가지가 않는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소망이 큰 것 같다.

이런 태도가 장점이 될 때도 많다. 팀원들이 종종 나에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좋은 얘기일때도 있고, 다소 아쉬운 속내를 말할때도 있다. 물론 팀원들한테 들은 얘기는 내 입으로 절대 꺼내지 않는다. 이건 서로간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상호간의 믿음이 깨지는 순간 많은것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했던 사내에 말하지 않을 것이고, 상호평가에도 반영하거나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게 긍정이던 부정이던.

하지만 이게 무조건적인 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괜히 싫은 말 못해서 속앓이 할때도 많고, 무엇보다 결국 누군가는 남들이 보기에 악역이 되어야 한다. 책임지고 싫은말도 해야하고, 아쉬운 소리도 내뱉을줄 알아야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역할을 그저 기피만 하는건지, 진짜로 못하는건지…

남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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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형님의 카카오톡 문구가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변경되지 않았었다. 그 글귀가 ‘입술에 30초, 가슴에 30년’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한 생각이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좋고, 부럽기도 하다. 말을 청산유수로 조리있게 잘 하는것과 예쁘게 말하는건 분명 다르다.

말에는 오랜 향기가 남는다고 생각한다. 잊고 살다가 무심코 퍼지는 향에 떠오르는 기억처럼, 가끔 떠오르는 말들이 큰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짓게도 한다.

유쾌하면서 날카롭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출근길은 빽빽하다. 지하철에는 여름이 다가오는지 퀴퀴한 냄새도 제법 차있다. 내가 했던 말들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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