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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주도 만남

도메인 주도 만남

‘학창 시절 친구가 오래 간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문구들 중 일부는 윗세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환갑 잔치의 위상조차 달라진 지금, 그 시대와 내가 겪는 세상이 비록 많이 다를지라도 사람간의 관계, 경험은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에 와서 어느정도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 시절 친구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굉장히 강한 결합을 맺게 했다. 운동장 쉼터에 가면 나무 그늘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던 것 같다. 칡과 등나무가 뒤엉켜 있는게 갈등의 어원이란 건 모른채, 강한 유대감의 상징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결합이 언젠가 풀리는 순간 학창 시절을 공유했다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중,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가면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같은 환경, 공간을 공유하며 지냈다. 관심사는 대부분 비슷했고, 비슷한 꿈을 공유하며 살았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경험도 크게 다를 바 없고, 대학 진학이라는 공동의 목표도 있었다. 뒤돌아서면 되돌아보고 싶은 만남들이었다. 항상 하고 싶은 얘기가 가득했고,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로 각자의 영역이 달라졌다. 같은 학교, 학생, 동네라는 의존성이 서서히 약해졌다. 긴 시간을 이어주던 많은 단어들이 그 시절을 기념하는 추억거리가 되어갔다.
워낙 길었던 세월 덕분일까, 과거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만남은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얘기하는 자리가 늘어갔다. 예전처럼 같은 꿈을 꿀 것만 같았지만, 이미 서로간의 경험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점점 뒤돌은채로 되돌리지 않는 만남들이 생겨났다. 그저 다 같이 두루두루 잘 지내면 좋지 않냐는 말들로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 땐 몰랐던 것 같다. 관심사가 다른 모임끼리의 만남은 인내심이 바닥나지 않은 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걸.

서서히 각자의 도메인이 생겨났다. 그 작은 도메인 안에서도 점점 경계가 좁혀졌다. 나는 격벽을 허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되돌아보고 싶은 만남이 있다. 얘기는 계속되고, 웃음도 있었는데 정작 남은건 씁쓸한 기분 뿐이다. 또 다른 경계가 나뉘는걸 알았던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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